야설

모자들의 교향곡 53부

야오리 1,741 2019.01.03 00:10
"서..선생님....." 마담의 집앞에서 선생님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선규는 혼이 나간것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며 간신히 입이나마 열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냉기가 도는 무표정이었으나 눈에서는 극심한 분노가 보였다.  그러나 겨우 정신을 수습한 선규는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하는 궁금함과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 알고있는것보다는 마담이나 그녀가 고용한 사람이 그들을 지금 지켜보고 있지않나하는 겁부터 들었다. [지금 여기서 선생님과 나간다면 마담이 창문으로 볼수있겠지? 어떡하든 선생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한 선규는 선생님이 그를 노려보고 있건말건 상관하지않고 입을 그녀의 귀에 가까이대며 다급하게 속삭였다. "여기서 한참을 나가면 공원이 있어요, 제가 먼저 달려나갈테니 선생님은 저와는 상관없다는듯이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리고 절대로 위나 주위를 보시면 안돼요.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의 얼굴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변했으나 선규는 말이 끝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오로지 선생님이 그의 말대로 따라주기만을 바랄뿐이었다.  한참을 쉬지않고 뛰어가서 이윽고 공원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달리기를 멈추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나무들이 모여있는쪽으로 몸을 숨겼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주위를 살펴봐도 그를 따라오거나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이윽고 호흡을 진정시키자 비로소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과 의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입구에서 선생님을 만나고나서부터 지금까지는 너무나 놀라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이 그냥 거기를 지나가는 길이었을까? 아니야. 얼굴을 보니까 다 알고오신거 같던데. 왜 이렇게 일이 자꾸 꼬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생님이 어떻게 마담집을 찾았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너무나 두려움이 들어 그냥 도망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차피 학교에서 그녀를 매일 만나기때문에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남편에 대해서는 아시고 있으신걸까? 어떡하지? 선생님이 아셨으면 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렇게되면 엄마에게도 이사실이 알려질텐데]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선규는 울고만 싶었다.  심지어는 그냥 목숨을 끊어버릴까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침내 천천히 걸어오는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전히 굳어있는 얼굴로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그가 있는쪽으로 가까이오는 그녀는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나무뒤에 숨어있던 선규는 긴장을 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여기에요" 선생님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오자 선규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아 그의 뒤로 끌어당기고는 다시 그녀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나하여 얼굴을 약간 내밀고 살폈다.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아파트입구에서 보았던거처럼 차가운 인상의 그녀는 그에게서 무슨 설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어떻게 된건지 말해봐" "....." "학교에서 네얘기를 듣고 이상하다는걸 느꼈었어. 마치 뭔가를 알고있다는거 말이야. 그래서 지난 며칠동안 네뒤를 밟았었지. 방금전에 나왔던 여자집에 두번이나 찾아가고 또 그여자는 너희약국까지 찾아갔더라. 거기다가 제일 놀라운것은 그여자집을 지켜보고 있는데 애들아빠가 거기서 잠을 잔다는거야. 어떻게 된건지 어서 설명해봐" 걱정했던게 사실로 드러나자 선규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제는 모든게 끝장이구나. 몇사람이나 내뒤를 밟았는데 나는 어떻게 눈치를 하나도 못챌수가 있었지?] 선생님의 노려보는 눈길은 더이상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는 강요의 빛을 던지고 있었다.  모든것을 포기한 선규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충격을 받을 엄마와 그녀의 남편과 제자가 한여자와 그런 관계라는걸 선생님이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말을 할려고 고개를 약간 들어보니 조금 떨어진곳에 있는 벤치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보니까 나무들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사이에 있어서 누가 지나가도 눈에 잘 띄지를 않을거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서는 도저히 얘기를 못할것 같아서 벤치를 가리켰다. "저기에 앉아서 다 얘기해드릴게요" 벤치를 바라본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와 함께 벤치에 앉아서 싸늘한 얼굴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있던 선규는 그런 상태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마담을 만나 강제로 당한 일, 술집에서 그녀를 안고있는 선생님남편을 본 일, 그가 마담의 집에서 산다는걸 들은 얘기, 몇번 반발하다가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일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그동안 속에 있었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설움같은것들이 복받혀 올라오는걸 감당못하고 그도모르게 얼굴을 감싸고있는 두손안에서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그여자가 혁재아버지를 만나고 있다는걸 정말 몰랐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제딴에는 혼자서 어떻게 해볼려고 했었는데 너무나 역부족이었어요" 말을 모두 끝마친 선규는 앞으로 어떻게 될건가에 대해서 근심과 두려움이 밀려왔으나 그래도 혼자 고민하던것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놔서 심정이 시원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러는데 선생님이 그의 손을 잡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을 들어 말없이 쳐다보았다.  화를 많이 낼줄로 예상했던 그녀의 얼굴은 뜻밖에도 슬픔과 동정이 들어가 있었다. "너에게 그런일들이 일어난줄도 모르고..... 진작 나에게 말해주지 그랬어?" 측은한듯이 말하는 그녀의 어조도 아까와는 정반대로 매우 부드럽게 변해있었다. "네가 상심이 많았겠구나" 그리고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는 선규를 가슴품안에 안고는 등을 다독거려주며 달래었다.  엄마같이 따듯한 느낌이 나는 선생님의 품안에 들어오자 선규는 오래간만에 평온이 찾아온것 같았다.  마치 엄마에게 안겨있을때처럼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는 느낌이 들어 그동안 그의 가슴을 억누르고있던 괴로움과 고민이 사라지고 심신이 지쳐져서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있고 싶었다.  한참이 지난후에 울음이 가라않자 문득 며칠전에 선생님이 그의 가슴에 기대고 울었는데 지금이 입장이 뒤바뀌어져 있어서 묘한 느낌도 들었다.  그가 진정된걸 알아챈 선생님은 그의 얼굴을 들어 손수건으로 눈물자국을 닦아주며 따듯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걱정 하기도 벅찼을텐데 내생각도 그렇게 해줬다니 고마워, 선규야" "화 안나셨어요?" "내가 왜 화가 나? 오히려 미안한데" 그러더니 마담의 아파트쪽을 쳐다보며 분노가 가득 들어간 얼굴표정을 지었다.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그리고는 다시 선규를 보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너는 마음놓고 있어" "그러시지 마세요. 그러다가 선생님까지 다치실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단호히 머리를 내저었다. "이건 내일이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이제 그만 속을 앓지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줄 몰라서 그러시는거에요. 지금도 제가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안돼요. 제가 그냥 그사람을 만나면서 어떡하든 혁재아버지를 단념하도록 해볼테니까 선생님은 그냥 계세요" "내남편이 연관되어 있고 네가 그런 안좋은일에 빠져있는데 내가 어떻게 모른척 할수있니? 걱정하지마.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협박을 한다고 하니 만일을 대비해서 네어머님께 전부 말씀드리자" 그말을 듣자 선규는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펄쩍 뛰었다. "그건 안돼요!" "괜찮아. 처음에는 많이 놀라시겠지만 이해를 하실거야. 나도 잘 말씀드려줄게" "그래도 안돼요! 엄마에게 알려지면 절대 안돼요. 그러실거면 저는 가출할거나 죽을거에요" "뭐?" 기겁을 한 선생님은 그녀에게서 떨어져 잔뜩 긴장하고 있는 선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제발 엄마한테는 말씀하시지 말아주세요. 그거 들으면 엄마는 쓰러지세요. 저는 엄마가 그러는거 못봐요" "그렇지않아. 네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인데 당연히 용서해 주시겠지" "부탁이에요, 선생님. 제가 가출하거나 자살하는걸 보고싶지를 않으시다면 제발 그러지를 말아주세요" 간곡히 애원하는 선규를 한참동안 응시하던 선생님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다면 말씀 안드릴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님께 정말로 그여자가 찾아와서 말을 한다면 충격이 더 크실거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할테니 선생님은 그냥 모르는척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설득을 단념한 그녀는 긴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안도를 한 선규는 긴장을 풀고 벤치에 제대로 앉을수가 있었다. "어머님생각이 대단하구나" "....." "태수도 이일을 알고있니?" "학교앞에 있던 그여자의 차를 몇번 본적은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번쩍 들었다. "그여자가 줬다는 돈있지? 그거 수표니?" "네" "그럼 그거 쓰지말고 단단히 간직하고 있어라" "그래도 소용없을거에요. 전화 한통이면 경찰도 가만히 있는다고 그러던데....." 그러자 선생님은 코웃음을 쳤다. "그거야 일단 해보면 알겠지. 이래봐도 이나라는 그런 여자가 마음대로 할수있을정도로 부패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선규는 선생님의 말에 동의가 가지않아 불안감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또한번 일이 잘못되었을때는 그때야말로 정말로 끝장이었다.  "그여자하고 언제 또 만나기로 했니?" "정확히는 몰라요. 연락이 오면 가야하거든요" "어린학생을 데리고 그런짓을 하다니 양심도 없는 사람이구나. 더군다나 너는 싫다고 하는데도 협박이나 하고" 선생님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선규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마담과 이렇게 된거는 순전히 그녀때문이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마담과 똑같지. 처음에 안하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었더라면 이런일이 없었을텐데. 엄마 하나만으로도 모잘라 그런 나도 나쁜놈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선생님은 그를 보며 일러두었다. "내가 방법을 강구해볼테니까 일단 너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행동해. 내가 곧 너에게 연락을 줄게"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선생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면 또 사람을 붙힐지도 몰라요" "내걱정은 하지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만 집에 가야지?"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는걸 보고 선규도 함께 일어났다. "애들은 아직 외갓집에 있어요?" "응. 집안분위기도 그래서 어린나이에 혼란스러워 할까봐 당분간 그쪽에 맡겨났어" "혁재아버지와는 어떻게 하실거에요?" 그러자 굳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있는 선생님뒤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도 모르겠어. 나한테는 그사람보다 네일이 더 중요해" 그말을 들으며 선생님에게 남편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었다는것을 느꼈다.  어느새 어둑해진 공원을 나서며 선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저는 학교에서 어떻게 되는거에요? 정학정도로 그칠수 있을까요?" 그의 근심하는 얼굴을 보던 선생님은 조용한 웃음을 내지었다. "네가 잘못한것도 없는데 왜 처벌을 받어? 이일은 너와 나만이 알고있는걸로 하자. 그게 좋겠지?" 그제서야 비로소 안심이 된 선규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할게 뭐가 있니? 어른들의 일로 상처를 받은 네가 안스러운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인사를 하는 그를 붙잡고 따듯한 눈길로 쳐다보는 선생님을 선규도 말없이 마주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선규는 마담에게 연락이 오면 곧장 달려가서 그녀의 기분에 충족할려고 갖은 애를 썼다.  선생님도 학교에서 그를 볼때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평소처럼 대했다.  하지만 선규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일단 선생님에게 모든걸 털어놓았으나 그런다고 달라질게 없을것 같았고 또한 누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나 해서 심한 망상에 걸릴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엄마를 볼때면 마담이 그와 선생님의 일을 알고 찾아왔었나해서 그녀의 눈치를 살펴보기에 바빴다.  그러나 태연하게 행동해서 그런지 엄마는 저번처럼 그를 보며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을 마치고 음악실을 나오는데 선생님이 그보고 남으라는 말을 했다.  태수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전혀 이상한 기색없이 나간후 선규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오늘 일을 끝낼거야" 그녀의 말속에는 비장함까지 들어있어 선규는 은연중에 긴장을 했다. "그런데 네가 필요해. 오늘밤 그여자집으로 와줄수 있니?" "그러기는 하겠지만 뭘 어떻게 하실려고요? 만만히 볼 사람은 아니에요" "나도 그동안 준비를 해놨어. 걱정하지마. 오늘만 지나가면 그여자집에 다시는 안가도 되게 될거야. 나를 믿어" 그의 손을 잡고 확고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선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오늘은 마담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녀를 안만날때면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던 선규는 그곳에서 엄마에게 친구와 같이 공부를 할게 있다고 전화했다.  지난번에 그렇게 말하고 술집에 갔던 일이 있고해서 엄마는 처음에 의심하는 눈치였으나 그가 절대로 그런일이 없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독서실총무까지 바꿔주고 해서 겨우 그의 말을 믿게 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가보니 선생님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차분하던 그녀도 긴장이 되었는지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어떤때는 늦게 오던데 오늘만큼은 일찍 왔으면 좋겠네"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손발이 시려웠다.  그래서 선규가 두손을 비비자 그것을 본 선생님은 그의 손을 감싸주었다. "춥지? 나와달라고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이건 제일도 되는데요.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응. 이럴때는 차라도 한대 가지고 있다면 좋은데....." 그녀의 손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얼마동안 함께 잡고있으니 조금씩 따듯해져 갔다.  차가 오는쪽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가 별안간 나지막히 속삭이며 그를 잡고 몸을 숙였다. "오는거 같다" 선규도 쳐다보니 과연 선생님남편의 자동차였다.  차안에서는 그와 마담이 나와서 다정하게 끌어안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광경을 보고있던 선생님의 입술에서는 가느다란 경련이 일고있는것이 보였다.  그녀를 보는 선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겁이 났으나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우선 선생님이 다치지 않게 하는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들어간지 30분후에 선생님은 천천히 일어나서 그를 데리고 아파트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복도에서 그가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를 일러두고 주머니에서 소형녹음기를 꺼내 그의 외투안쪽에 부착시켜 주었다.  그녀도 옷속에 있는 다른하나의 녹음기를 작동시킨다음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자들이 취재할때 가지고 다니는 녹음기들을 보고 선규는 그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마담의 현관문앞에 도착하고 그녀가 신호를 보내며 문구멍에서 안보이게 몸을 숨기자 선규는 초인종을 눌렀다.  이런 늦은시간에 마담의 집을 찾아오는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녀 혼자만 있는것이 아니라 선생님남편도 있기 때문에 긴장이 무척 되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뒤 마담이 대답도 없이 문을 살며시 열었다.  문구멍으로 그를 보았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뜻밖이다는 표정과 못마땅함이 섞여있었다. "이시간에 네가 여기는 왠일이니?" 그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번개같이 문을 활짝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마담도 그녀를 제지할 틈이 없었다.  선규도 급히 들어와 문을 닫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을 붙잡을려는 마담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가 미리 집구조를 설명해줬기때문에 선생님은 아무런 거침없이 신발을 신은체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두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고 있는 마담은 다급한 소리로 나지막히 따졌다. "이게 무슨짓이야? 너 미쳤어? 그리고 저여자는 누구야?" "가만히 있어요" "가만. 낯이 익던데. 맞아. 그때 너네학교앞에서 봤던 선생님이 맞지?" "당신애인의 아내에요" "뭐라고?" 선규가 차갑게 응답하자 가운을 걸치고있는 그녀는 그저 경악만 하고 있을뿐이었다.  그토록 도도하고 냉정하게 굴던 마담이 이렇게 당황해하자 선규는 알수없는 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마담은 다시 그를 노려보며 발악했다.  "너 정말 혼나고 싶니? 당장 이손 놓지못해?" "서애리마담" 그러자 마담은 두눈을 더 크게 뜨면서 믿기지않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미성년자인 저를 돈까지 주며 성적으로 유혹하고 성인들만이 가는 그랜드 레스토랑해서 술멱여도 되는겁니까?" "....." "제가 싫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도 협박까지 하면서 계속 이래도 되요?" "정신이 나갔구나. 네가 이런다고 내손아귀에서 빠져나갈수 있을거 같애?" "왜요? 우습게 여기는 경찰이나 언론들을 전화 한통으로 입막고 또 저를 괴롭힐려고요?" "너 지금 크게 실수하는거야. 저남자를 놓친다 하더라도 너만은 끝까지 잡고있을거야. 지금이라도 용서를 바란다면 저여자와 당장 나가" 하지만 선규는 조금도 흔들림없이 냉혹한 표정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방안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릴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소리없이 조용했다.  "그여자 여기로 데려와라" 방안에 있는 선생님의 차가운 음성을 듣고 선규는 마담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입지를 않고있는지 선생님남편이 벌거벗은 상반신밑을 이불로만 가린체 멍한 얼굴로 침대위에 앉아있었다.  "그여자를 이남자옆에 앉혀라" 시키는대로 하자 마담은 두손으로 가운깃을 조이고 선생님을 표독하게 노려보며 소리질렀다.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게 어디있어요? 경찰부르기전에 당장 나가요!" 그러자 선생님은 조금도 동요없이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여자 좀 조용히 시켜요. 불륜을 저지른 주제에 경찰이 오면 큰일이잖아요" 입을 벌리고 마담과 아내를 번갈아 보던 남편은 이윽고 마담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눈치를 줬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선생님남편은 사진속에서보다 더 인텔리처럼 보였다.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한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남편을 혐오스럽다는듯이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겨우 이런여자와 바람을 피울려고 그바쁜척을 하고 집에서 큰소리치고 그랬어?" 이제는 경칭까지 써가며 추긍하는 선생님앞에서 남편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얼굴만 일그러지고 있었다.  "왜 아무말이 없어? 그렇게 잘난척을 하더니" "....." "애인하고 함께 나를 똑바로 봐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보게" 그러더니 그녀는 작은 카메라를 꺼내 침대위에 앉아있는 남편과 마담의 사진들을 찍었다.  그러자 그들은 경악을 하며 소리쳤다. "지..지금 뭐하는거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들이 일어날려고 하자 선규는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선생님과 그들사이에 섰다.  남편은 벌거벗고 있는것을 의식해서인지 다시 자리에 앉고 마담은 안절부절 했다.  선생님은 남편쪽으로 조금 다가가더니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잘들어. 당신과 나는 이제 여기서 끝이야. 이여자와 살든말든 마음대로 해" "....." "하지만 아이들의 양육권은 내게 있고 재산의 반도 줘야해. 그러지 않을려고 암만 발버둥을 쳐도 올해 여성법이 개정되서 힘들거야. 내요구대로 안해주면 간통죄로 고소할줄 알아. 그렇게되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승진에는 지장이 많게 된다는걸 잘 알지?" 남편의 얼굴은 부르르 떨리면서 가느다란 숨소리만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계속 말했다. "인간이 불쌍해서 이정도로 봐주는줄 알아. 앞으로 나와 애들근처에 오면 알아서 해. 이증거들을 당신회사에부터 공개할거니까" 이제는 남편의 입에서 비통해하는 신음소리마저 들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비웃듯이 바라보던 선생님은 이번에는 마담에게 다가갔다. "파렴치한 인간같으니라고. 할짓이 없어서 어린애를 유혹하고 협박까지 해?" 그러자 선생님남편은 깜짝 놀래며 마담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새파래진 마담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황급히 부인했다. "거짓말이에요. 난 그런적이 없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냉소를 흘리며 선규의 외투에서 녹음기를 꺼내 틀어주었다.  거실에서 나눴던 대화내용을 듣던 마담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남편은 경악을 했다.  선생님은 선규를 분노의 눈길로 노려보는 마담에게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애를 또 괴롭히면 알아서 해. 돈까지 줘서 미성년자에게 윤락을 강요한것까지 들어가니까 곤란하게 될거야" 그러자 마담은 냉소를 흘리며 코웃음을 쳤다. "마음대로 해보시지" 하지만 선생님도 함께 냉소를 지으며 거침없이 말했다. "뒤에 빽이 좀 있다고 여유가 만만하신가 본데 나도 검찰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 당신처럼 뒷조사를 해봤더니 당신가게인 그랜드 레스토랑에서 뇌물이 오가며 로비활동이 벌어진다고 하더군. 그거 알려지면 몇사람들이 다치고 당신도 힘들어질거야. 언론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니라서 해외언론에 말하는 방법도 있어" "....." "더군다나 당신도 그런 자리를 성사시켜 주느라고 무슨 특혜나 돈을 받았을텐에 세무조사받으면 흥미롭겠군. 이애에게 준 수표번호를 추적해보면 당신 아니면 아마 재미나는 사람이 나오겠지?" 그제서야 마담은 숨도 못쉬면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옆에 있던 선규도 경의로운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담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본적은 별로 없었지만 자신은 물론이고 술집 사람들도 그녀의 존재앞에서는 압도당했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밑에서 일한다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녀에게서는 사람을 제압할 무언가가 느껴져서 함부로 대할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담임선생님은 눈하나 깜짝하지않고 오히려 마담이 압도당하고 있었다. "검찰쪽에서 수사를 착수할려고 하는데 당신이 이애를 건들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주면 내가 잘 말해줄수 있어. 물론 뒤를 밟는다는 짓도 당장 그만둬야 하고" "....." "말해. 어떻게 할거야?" "더..더이상 안그럴게요" 그러자 선생님은 자신의 외투속에 있는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는 남편을 돌아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이혼서류를 준비해서 보낼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런다음 남편과 마담을 노려보다가 방을 나갔다.  선규는 마담이 준 삐삐를 침대위에 던지고 그들이 따라오나 살피며 선생님을 따라나왔다.  다행히도 그들뒤로는 아무도 따라올 생각을 않했다. 밖을 나와 마담의 아파트에서 얼마를 벗어나자 선생님은 그가 착용했던 녹음기에서 테이프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거 네가 잘 간직하고 있어라. 더이상 너를 괴롭히지 않을거다. 또 그런다면 나에게 즉시 말하고" 오래동안 같이 살던 남자와 방금전에 헤어졌는데도 선생님에게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걸로 끝이 날가요?" "그럴거야. 그러지 않으면 곤란해질테니까. 저도 겁이 나는게 있겠지" "그런데 술집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정말이에요?" "친척오빠가 경찰청에 있는데 검찰에 있다고 부풀린거야. 그래야 좀더 겁을 낼거 같아서. 그오빠에게 부탁했더니 정말 그런 정보가 나오더라. 검찰쪽에서도 그술집에 대해서 알고있고. 꽤 많은 사회거물들이 드나든다고 해. 그러고 보면 네말대로 대단한 여자인가봐" "....." 선생님은 그에게서 눈을 떼고 먼곳을 응시하다가 착잡한 어조로 말을 계속 했다. "애아빠는 은행쪽에서 일하는데 대출에도 관련이 있어. 사업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과 친해야 되니까 그술집에게는 중요했을거야" 그말을 듣고 선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남편에게서 자금이 나온다니 마담이 정성을 쏟을만도 했다. [그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온갖 감언이설을 해댔겠으니 거기에 넘어간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한숨을 쉬는데 선생님은 그의 팔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모든게 다 끝났으니 더이상 내걱정 하지말고 너는 학업에만 전념하면 돼. 너에겐 충격이 컸기때문에 쉽게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잊도록 해라. 그런거 자꾸 생각하면 도움이 될게 하나도 없어. 알았지?" 선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은 슬프게 보이는 눈으로 말없이 그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다음날아침, 선규는 엄마에게 신문배달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공부때문에 그런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기뻐했다. 저녁에 혜영은 태수와 함께 얘기를 하며 집에 오고있었다. "선규가 신문배달을 그만두겠데요" "왜?" "공부때문에요" "그애엄마가 좋아하겠구나. 늘 아들이 힘든 배달을 한다고 걱정하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태수를 측은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선규엄마처럼 돈을 많이 벌면 너도 배달을 안하고 공부에만 전념할수 있을텐데..." "지금까지 아무지장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너한테 미안하니까 그렇지" "운동도 되고해서 저는 좋아요. 항상 책상앞에만 앉아있는것보다 낫잖아요" 그래도 아들이 여전히 불쌍하게 보여서 어두운 얼굴로 걷고있는데 태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엄마, 저없이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곧 수학여행을 가잖아요" "3박4일인데 뭐. 그리고 내가 애니? 너없이 아무것도 못할까봐 걱정돼?" "그래도 엄마와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라서요" "그건 그렇다. 정말 우리는 한번도 떨어져 있어 본적이 없었네" "저 안보고 싶으시겠어요?" "왜?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져 있는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 "그게 아니고 엄마를 하루라도 못본다는것이 싫어서요. 제가 아니라 엄마가 혼자있는 집에서 무서워하시면 어떡해요?" 겸연쩍게 웃는 아들을 보며 혜영은 살포시 미소를 짓고 수줍게 말했다. "남편이 잠시 출장갔다 생각하면 되는거지" 그러자 태수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팔을 뻗어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안았다. 일요일날, 선규는 엄마에게 선생님집을 다녀오겠다고 한뒤 기타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동안 태연하게 행동하는 선생님을 생각하니 강인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쨋든 남편하고 헤어졌기때문에 속으로는 상심이 무척 클거라는 생각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마담은 더이상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녀가 어떻게 지내나도 볼겸해서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동안에 함께 겪었던 일들때문에 선생님과 동질감도 들곤 했다.  집으로 들어가니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다. "어쩐일이니?" "선생님이 잘 계시나 해서요. 그리고 저번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드렸잖아요" "이제는 너를 찾지않지?" "네. 다 선생님덕분이에요. 감사드려요" "내가 뭘 했다고. 어서 들어와라" 선생님이 음료수를 내오는동안 그는 거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항상 보아왔던 가족사진이 없어졌다는걸 발견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어도 남편과 잘 풀리기를 바랬던 선규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혼하실 모양이구나. 엄마처럼 되시겠네] 선생님이 음료수를 가져와서 옆에 앉으며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이제는 괜찮니?" "네. 그냥 한순간 지나간 악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잘 생각했다. 그래야지"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러자 그녀는 분노와 허탈함이 섞인 기색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애아빠와 헤어질거야" "그래도 다시한번 만나셔서 말씀해 보시는게 어떻겠어요? 애들도 끼어있는데..." 그러나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부터 헤어질 생각을 하고있었어. 다만 애들때문에 망설였던거지. 우리집도 너희집과 똑같애. 나도 애정이 식은지 오래고 아이들도 아빠를 잘 보지를 못해서 낮선사람 보듯이 해. 이러는게 아이들에게 안좋은거는 알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속에서 자라나는것보다는 낫겠지. 너는 어땠니?" "저도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없어요. 오히려 엄마가 속상해할 필요가 없어서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해요" "네아버지를 미워하니?" "솔직히 아빠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와 저를 버리고 간 사람인데요" 고개를 떨구고 씁쓸한 얼굴로 말하는 선규를 물끄러미 보던 선생님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의 이런 집안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 "선생님이 미안해 하실게 뭐가 있어요? 잘못은 혁재아버지가 하신 건데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이런걸 이해하니까 괘념하지 마세요. 전 선생님편이에요" 그러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맥없이 웃었다. "그래도 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러니까 한심해 보이지?" "절대 그렇지 않아요. 교사는 인간이 아닌가요? 힘내세요. 오히려 선생님은 우리엄마보다 나으시네요. 옆에 자식들이 둘씩이나 있잖아요. 애들이 자라서 선생님께 많은 힘이 되어드릴거에요" 힘없이 미소짓던 그녀는 밑에 있는 기타케이스로 눈길을 돌렸다. "이상해" "뭐가요?" "집에 있을때는 답답하기만한데 너와 음악을 하고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저도 그래요. 기분이 안좋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그러면 기타들고 곧바로 달려올게요" 그말을 듣고 선생님은 눈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그를 신기한듯이 쳐다보았다. "너를 처음볼때가 생각난다" "....." "그때 네가 신문돌리다가 우리이웃집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랬었잖아" 그소리에 선규는 기겁을 하며 두눈이 커다랗게 떠졌으나 그녀는 아무렇지가 않다는듯 계속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아..알고 계셨어요?" "그럼. 내가 모르는줄 알았니? 지금은 저집 이사갔지만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동네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했었는데. 어린애들이 지나가다가 그런 소리를 들어봐. 큰일나는거지. 그렇다고 뭐라 한마디 하면 내집에서 내가 하는일을 왜 참견하냐고 화를 내고. 하여간 별난 집이었어" "....." "그집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걸 알고 짓굿은 남자들이 그옆을 기웃거리기도 했었거든. 그래서 난 너를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보고 처음에는 안좋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나중에 네가 이런 착한 애라는걸 알고 많이 신기했었다" 그말을 듣고 선규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는 학교첫날 선생님을 보고 전학갈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러자 그녀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래서 처음에 날 피하고 그랬던거야? 하긴 나도 교실에서 널 보고 많이 놀랬었으니까. 혹시 반에 문제아가 들어온거는 아닌가 했었거든" 그녀의 말에 선규도 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와 애들한테 잘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네가 그술집마담을 만나는걸 보고 얼마나 실망했었는줄 몰라. 혹시 내앞에서만 그러는거는 아닌가해서. 너에게 자초지정을 물어보는거였는데 다짜고짜 화를 낸 내가 어리석었지. 그때 그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화를 내실만도 했죠" 마담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 기억났는지 잠시 말이 없던 선생님은 착잡한 어조로 부탁했다. "선규야, '카바티나'를 들려줄래?" 고개를 끄덕인 선규는 기타를 꺼내 '카바티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고요하고 슬픈 음악을 조용히 듣던 선생님은 별안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규는 연주를 멈추고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애정이 식었다고 하지만 선생님도 인간이신데 당연히 괴로우시겠지] 그토록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던 선생님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걸 보니 선규에게는 그녀가 자신처럼 감정이 있는 보통인간으로 보여져서 연민의 정이 생겼다.  한동안 그런 그녀를 보던 그는 문득 지난번에 선생님이 그의 가슴에 기대고 위로를 받았던게 떠올랐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없이 기타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말없이 그의 품안에 안긴 선생님은 그가 등을 천천히 다독거려주자 별안간 그의 목을 끌어안고 가슴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그의 볼에 갖다대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선규는 적잖이 놀랬으나 선생님이 너무 슬퍼서 그러는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슬픔을 달래주고싶어 그녀의 들썩거리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있으니 선생님의 눈물이 그녀의 얼굴과 밀착되어 있는 볼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촉촉한 눈물은 그의 가슴에 동요를 가쳐다주고 있었다.  교단에 서서 그를 가르치는 학교선생님이란 생각이 안들고 자꾸 엄마처럼 측은한 마음이 들어 왠지모를 친근함이 들었다.  한참동안 그를 안고 울먹이던 그녀는 어느순간에 머리를 들더니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차분하거나 냉정한 기색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애처로움만이 있을뿐이었다.  동정심이 왈칵 올라온 선규의 머리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흐르는 고요한 침묵속에 마주보던 선규와 선생님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술들을 포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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